예끼마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예끼마을을 소개합니다.

마을 유래와 역사

서부리가 자리한 이 곳은 옛 예안면(조선시대 예안현)의 중심으로 한국 유학의 거두인 퇴계를 비롯해 많은 문인을 배출한 한국 문화사의 중심이자 안동부와 함께 안동 문화권을 만들어 온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예안은 낙동강 상류에 자리한 배산임수의 기름진 분지 지형으로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 신령이 서린 복된 땅'이라 소개될 만큼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장날이면 인근에서 이고지고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서 농사지은 것을 팔거나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크고 번성했습니다.
댐이 들어선 직후까지만 해도 마을 규모 약 400여가구에 안동을 경유해 대구를 왕복하던 직행 버스를 운행했을 정도였지만 머지않아 주민수는 급감했고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갔으며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던 어르신들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마을은 점차 비어갔습니다.
이 곳 역시 잊혀져 가는 여느 시골마을과 같았지만 뜻있는 주민들이 모여 마을 재생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주민들의 의자와 관계기관의 뜻이 모아졌고 2014년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마을의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다시 생기와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선성현과 예안의 역사

삼국시대에는 매곡현(買谷縣)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선곡현(善谷縣)으로 개명하였고, 신라 말, 고창전투에서 의병을 일으켜 왕건을 도운 '이능선'의 공으로 선곡을 선성(宣城)으로 개칭 후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예안군(禮安郡)으로 안동부(安東府)에 속했다가 이후 조선 태종 때 예안현(禮安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예안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안동군(安東郡)에 합병되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고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일부 남은 곳과 이주민을 위해 조성된 택지(현 예끼마을)는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안동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 도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예안현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및 서부리 일원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낙동강에 수몰되었다.

※ 지명의 유래와 선성현의 역사, 예안의 인물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선성현문화단지 내에 위치한 역사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